2024. 5. 17. - 6. 7

나의 작업은 결핍과 약함에서 오는 크고작은 내적 상처들을 견디어가며, 그 상처의 조각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그때의 순간을 화해하고, 스스로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은 몸부림 일지도 모른다. 견디며 버텨낸 시간들이 나에겐 어떤 형태로 남아 마음속의 찌꺼기 들을 긁어내어 무 거움에서 가벼워지고 싶은 나의 작은 열망인지도 모른다
마치,장작불이 타오를때 순간의 열기처럼 나에게 있어서 나답지 못했던 기억들을 태워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 작업은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 어떤 지점에서 드러내고 감추며, 혼자 놀고 있는 여린 아 이의 모습인지도 ....
연필을 잡고 선을 긋고 있으면, 나는 참 좋다. (엄소영)
아주 오래전 두려움이라는 것에게 떠밀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볕도 들지 않는 그곳 에서 꽤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 시간은 피할 수 없었던 공포와 암흑이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았던 그 시간을 동여맨 끈을 풀고 살며시 들여다보니 그곳은 어둡고 무거운 느낌과는 또 다른 결의 감각이 잔존해 있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관계 맺음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의로든 타의로든 다양한 관계 속에 얽혀 살아간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겪으며 여러 결의 관계를 만든다. 그것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 관계를 정리해 내기도 한다. 이런 관계 맺음 속에서 '이 사람과 잘 지내야 하는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이 사람이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등의 두려움 때문에 괴로움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런 두려움의 감정은 상대방과 잘 지내고 싶고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긍정적 욕구에서 유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두려움을 나약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뒤처지고 퇴보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 감정에 의연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가 꺼려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기는 두려움은 위대한 감정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본능적으로 내가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라는 시그널이다. 두려움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 상황을 피할지라도 미 래에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재빨리 현명한 선 택을 하라는 본능의 신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적절한 대처를 하기만 하면 된다. 엄소영 작가는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을 종이에 흑연으로 새겨 넣는다. 자신만의 시각언어인 '선' 과 '밝음과 어둠'을 통해 오랜 시간 안고 있는 그 감정을 다양한 이야기로 드러낸다. 이번 전 시에서는 지난 4월 파리 전시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또 다른 감정의 층위를 반복적 긋기로 쌓 아올린 몇 겹의 형상으로 보여준다. 수없이 선을 긋고 또 긋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연민하고 걸러내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칠정 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아닐까. 작가의 두려움 안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그는 두려 움을 탈피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엄소영 작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대면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한 옳고 그름을,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반추하며 스스로 두려움의 상황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글: 홍지연(스페이스mm 디렉터)







